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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역사 ----고려불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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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6) 고려불교 고려는 불교적 정신의 기반 위에 선 국가로서 고려를 세운 왕건은 신라 말기에 출현한 도선의 도참사상을 신봉하였다. 불교의 선근공덕 (善根功德)사상에다 도교의 음양오행과 풍수지리를 가미한 과도기적인 사상에 영향을 받은 왕건은 도선의 사후에도 그를 숭배했다. 왕은 불교 신앙에 의해 민심을 수습하고 국운의 가호를 얻으려고 했으며 이러한 왕의 원력은 불교 외호에 힘쓰게 되어 많은 절을 짓고 법회를 열게 되었다. 송도에 호국 도량으로 10개의 절을 지었으며, 서경에 호국 탑인 9층탑을 세위 몸소 불교를 널리 펼 것을 발원하는 글을 썼다. 특히 왕가에서 계계승승 불교를 믿도록 하기 위해 훈요십조'를 만들고, 팔관회와 함께 연등회를 열 것을 당부했다 팔관회는 매년 11월 15일을 전후한 3일 간을 공휴일로 정하여 성대히 행해졌으며, 고유한 습속과 결합된 불교행사로서 군신이 음악 · 가무 · 백희 등으로 다 함께 즐기는 가운데 제불(諸佛)과 천지신명(天地神明)을 즐겁게 하여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빌던 행사였다. 불교의 의식과 법희에 의해서 나라를 보호하려는 태조의 염원은 고려불교의 성격과 그 방향을 개국 초부터 정해 버렸다. 태조는 불교를 외호하는 데 있어서 종파에 차별을 두지 않았으며, 자신의 무인적인 성격에서 자연히 선종을 좋아하여 선종에 귀의하고 왕사와 국사를 두었다. 또 958년 관리 등용을 위해 과거제도를 둔 데에 견주어 승려의 위계 질서를 확립하려고 승과를 설치하였다. 신라 말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구산선문은 고려에 와서 이엄(利嚴)의 수미산파의 성립으로 마침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선법의 영향으로 여러 종파의 교학이 그 빛을 잃은 듯했으나 화엄교학만은 그 세력을 잃지 않았다. 화엄교학은 통일신라시대에 의상이 널리 펼친 이래 끊임없이 연구되어 고려에 계승된 것이다. 화엄교학은 고려 시대 전체를 통해 선종이나 교종을 막론하고 널리 연구되었다. 그것은 대승 보살의 실천적 행동을 강조한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균여(均如)의 ,보현십원가도 화엄교학에 의해서 이룩된 작품이다. 고려시대에는 왕자들의 출가가 많았는데, 특히 대각국사 의천은 문종의 넷째 왕자로 11세에 출가하여 영통사의 왕사 난원(蘭圓)에게서 화엄을 배웠고 송나라에 유학하여 천태학을 전수 받고 귀국하였다. 그 후 그는 천태교관을 널리 강설하였으며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국내외의 논자(論者)틀 모두 수집하여 속장경을 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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