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역사 ----고려불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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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는 초기부터 선이 성하였으나 천태교학이 들어온 중기 이후에는 재래 신종의 명맥은 부진하였다. 그러나 선승의 계맥은 끊이지 않아 고려 후기에는 선종 일색이 되었다. 특히 지눌은 구산선문의 교리를 종합하여 우리 나라 불교와 정통적인 조계종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고려시대에 특기할 것은 역시 '고려대장경'의 판각이다. 고려는 불교사상의 정리와 그 지도를 위해 대장경을 간행함으로써 더욱 그 융성의 기운을 북돋웠다. 고려 대장경의 제1차 조조(雕造)가 시작된 것은 현종 10년경부터이며 선종 4년(1087)에 가서야 완성하였다. 이것 이 고려초 대장경이요, 총 6,000권에 이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고려대장경은 그 양과 질에 있어서 세계 모든 대장경의 표본이 된다. 소위 팔만대장경이라 하여 해인사에 소장된 법보이다. 이러한 거대한 사업의 착수는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려는 생각으로 발원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이 고려대장경은 그 체제나 내용에서는 물론이고 글 자체의 정교함에 있어서도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조판 시기가 40여년에 걸친 북방민족과의 항쟁 중이었고 이 고려대장경은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민족적 슬기가 함축된 결과였으므로 우리에게 더욱 의미가 깊다. 이처럼 아름답고 순수한 믿음은 끈기 있게 연속되는 문화의식이 되어 고려시대에도 선대의 전통을 보존하려 하였고, 이를 국력에 총결하여 항몽의 외침 속에서 불교의 신앙은 호국의 일념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고려불교는 고려 말에 이르러 국권의 쇠퇴와 함께 속화되었고 유신들의 배척론이 비등하면서 점차 약화 되어 갔다. 한편 사원의 세력이 팽창되자 그 경제적 부를 지키기 위해 무력이 필요하게 되어 사원에서는 승병을 양성하였다. 승병의 수도 상당하여 때로는 국방을 위한 군사력으로도 이용되었다. 여진 정벌 때의 항마군, 몽고 침입 당시 처인성 싸움과 충주 싸움에서의 김윤후(金允候)의 무력 배경이 된 승병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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