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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제 불교 백제에는 고구려보다 12년 뒤인 384년(침류왕 1)에 불교가 전래되었는데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東晋)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서 백제의 서울인 광주(廣州) 남한산(南漢山)으로 들어왔다. 침류왕은 교외에까지 나가 친히 스님을 맞이하였고, 궁중으로 모셔 극진히 받들고 공양하였다. 고구려에 불교를 전했던 순도는 대국(大國)의 왕으로 군림했던 부견의 사절과 함께 온 스님으로, 외교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엇으나 마라난타는 개인적으로 바다를 건너서 온 일개 외국 승려에 불과하였다. 그런데도 백제의 침류왕은 몸소 교외에까지 나가 스님을 맞이하였고, 궁중으로 모셔와 공경히 받들고 공양하였다. 이는 백제인들에게 있어서 불교에 대한 이해와 침류왕 스스로의 불교에 대한 갈망을 엿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백제는 바다를 통해 인접해 있던 중국의 문물에 적지 앉은 영향을 받아 왔으며, 새로운 문화인 불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토대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마라난타가 오자 서슴없이 받아들여 환영하였고, 공식적으로 불교를 공인하게 되었다. 이듬해 2월, 침류왕은 한산에 절을 창건하고 10명의 승려를 배출시킴으로서, 백제의 불교 수용은 그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이었다. 이것은 백제가 이미 불교문화를 받아들일 충분한 정신적 자세를 갖추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391년 (아신왕 1년) 왕은 백성들에게 \"불법을 믿어 복을 구하라.\"라는 영을 내림으로써 불교는 생활화되어 갔고, 이것은 백제의 정신문화를 신앙과 사상으로 발전시키는 확고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백제불교의 기록은 약 140년쯤 중단되어 오다가 26대 성왕(聖王)에 이르러 크게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백제불교의 특징은 계율의 중시에 있었는데, 성왕 4년(526)에는 고승 겸익(兼益)이 인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져온 불교 경전 율부(律部)을 번역하였다. 겸익은 일찍이 바다를 건너 중부인도의 상가나사(常伽那寺)에서 5 년 동안 범문(梵文)을 익히고, 계율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는 인도의 고승 배달다(倍達多) 삼장과 더불어 범문 <아비담장(阿毘曇藏)>과 <오부율문(五部律文)>의 원전을 번역하여 율부(律部)72권을 완성하였다. 이에 왕은 새로 번역된 비담(毘曇)과 신율(新律)의 서문을 지어 태요전(台耀殿)에 봉안함으로써 겸익은 백제 율종의 시조가 되었다. 또한 성왕 23년에는 장육(丈六) 불상을 조성하여 여러 중생들이 다같이 해탈하기를 기원하였고, 성왕 30년에는 불교를 일본에 전파했는데 이것이 한국 불교가 일본에 전해진 최초의 일이다. 불교 뿐 아니라 승려 예술가, 건축가, 기능공들이 29대 법왕 원년(599)에는 살생을 금지하는 영을 내려 민가에서 기르는 매 종류를 놓아주게 하고, 고기 잡고 사냥하는 도구를 모두 불태우게 하는 등 계율의 엄격성을 철저하게 강조하였다. 이듬해에는 30명의 승려를 배출시켰고 도성인 부여에 왕흥사(王興寺)를 세워두기도 하였다. 30대 무왕(600~641) 때에는 익산에 미륵사(彌勒寺)를 창건하고, 거대한 탑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형식 위주의\'사원 건립과 계율 중심의 엄격함이 백제불교를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백제에서는 율종 외에 열반종(涅槃宗) · 삼론종(三論宗) · 성실종(成實宗) 등에 관한 연구도 성하여 성왕 때에는 양(梁)에 사신을 파견하여 <열반경>의 주석서를 구하였다. 말기에는 고구려의 보덕이 망명해 옴으로써 연구는 더욱 활기를 띄게 되었으며 통일신라까지 계승되었다. 한국 불교사 산책 - 김상현 지음 백제불교의 특징은 계율(戒律)의 중시에 있었다. 성왕(聖王) 때 인도에시 돌아온 겸익(謙益)은 율부(律部)를 번역했고, 담욱(曇旭)과 혜인(惠仁)은 이에 대한 연구를 했다. 일본의 선신니(善信尼) 등이 백제의 계율학을 배워 갔고, 성왕은 계율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불교를 장려하였다. 많은 백제의 고승, 기술자, 건축가, 예술가 등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면서 소위 아스카(飛鳥)문화의 형성에 기여했고, 일본 고대국가의 정비에 정신적 이념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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